'당근마켓' 창업자 김용현 동문과의 인터뷰
[Alumni Interview 신설]
민간, 공직, 학계에 진출해 계신 경제학부 동문들을 인터뷰합니다. 동문들의 학부생 시절, 진로 선택 동기, 현업에서의 고민, 후배 경제학부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 경제학부 학부생에게 폭넓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동문 간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Alumni Interview를 경제학부 홈페이지에 매달 하나씩 게재할 예정입니다.
가을 냄새가 옅게 풍기던 2022년 초가을, 당근마켓 공동창업자 김용현 동문(경제학부 97학번)을 만났습니다.
대표님은 어떠한 학부생활을 보내셨나요? 인상 깊은 학교 수업 혹은 동아리가 있으신가요?
▶ 과 생활을 활동적으로 하기보다는 오히려 과 밖 생활을 더 적극적으로 했던 것 같습니다. 특히 괴나리라는 여행동아리 활동을 열심히 했어요. 열 명이 넘는 인원을 인솔하는 장기 여행 프로그램을 기획하면서 특히 많이 배웠습니다. 여행 코스와 일정, 그리고 비용까지 세세한 사항을 꼼꼼히 기획해야 해서 심혈을 기울일 수밖에 없었어요. 또 그 과정에서 친구들이 어떤 여행을 원하는지 잘 파악해서 의미 있는 여행을 기획해야 했죠.
더불어 당시에는 경제학부 학회가 활발해서 학회 활동을 많이 했고, 경제사 등의 주제로 세미나를 여러 차례 참가했습니다. 또한 마케팅원론이나 조직구조론, 회계학 등 관심 있는 경영대 수업도 많이 들었습니다.
경영, 경제 이외 다른 분야 수업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수업은 무엇이셨나요? 혹은 지금 본인의 위치까지 올라가는 데에 큰 도움이 됐던 수업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 제가 원래 이과생이어서 건축학과에 진학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버지를 따라서 해외에 나갔다 오면서 문과로 전향하여 경제학부에 진학하게 되었어요. 어릴 때부터 건축이나 조경, 도시 설계에 관심이 많았기에 공간 설계학 개론 수업이 기억에 가장 남아요. 건축학과 수업은 기획자로 일하는 데에, 그리고 사업을 시작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죠. 앱 기획자는 로그인과 회원 가입부터 시작해서 맨 마지막 단계인 탈퇴까지 유저 플로우를 설계할 줄 알아야 하는데, 이러한 앱을 기획하는 과정이 건축 설계나 조경학에서 사람의 동선을 설계하는 것과 비슷했어요.
ㅇ조경학과 도시설계 관련 책도 여러 권 읽었었는데 상당히 흥미로웠어요. 예를 들면 '한 사람이 공원 입구로 들어와서 어떻게 이 사람이 지루하지 않도록 끝까지 공원을 다 둘러볼 수 있게 만들 수 있을까?'와 같은 동선 설계에 대한 내용을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앞서 경제학부에 입학하기를 잘 했다고 말씀하셨는데, 사실 경제와 창업의 공통분모가 잘 떠오르지는 않습니다. 경제학부에서의 배움이 어떻게 사업에 도움이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 사업을 할 때 경제의 흐름을 알면 도움이 많이 됩니다. 예를 들면 지금도 경기 침체기와 인플레이션이 왔잖아요. 사업을 할 때 이것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위험해질 수 있어요. 그래서 외부투자를 받을 때와 전문가의 조언 및 예측을 들을 때 큰 도움을 받았던 것 같아요. 경기 흐름을 제가 모두 분석하고 전망하는 것은 아니지만 관련 지식이 있으니 전문가들의 말을 참고해서 좀 더 빨리, 기민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삼성물산, 네이버, 카카오를 거쳐 최종적으로 창업을 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 처음부터 사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상사맨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해외를 방문할 기회가 많았고, 그 과정에서 해외를 돌아다니면서 사업하는 것을 꿈꾸게 되었습니다. 졸업 후 자연스레 삼성물산 상사부분으로 입사했습니다. 원래 오퍼상(무역거래에서 매수인과 매도인 사이 거래조건을 조정하는 일)을 하고 싶었는데, 인터넷의 발달로 무역업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것을 보고 약 4년 만에 네이버로 이직하며 IT 산업으로 진로를 바꾸게 되었습니다. 사실 막연하게 IT분야에서 창업을 하고 싶었기 때문이기도 해요. 그래서 네이버에서 기획자로 일하며 IT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습니다.
이후 카카오로 이직했는데, 당시 카카오의 전 직원이 40명에 불과했을 때였어요. 다들 말렸지만 저는 모바일에 기회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카카오톡의 고속 성장에 확신이 있었어요. 카카오로 이직한 이후에는 굵직한 프로젝트를 할 기회가 많았죠. 플러스 친구 같은 독립적인 프로젝트를 기획하는 과정에서도 많이 배웠고, 카카오플레이스를 출시하는 과정에서 김재현 당근마켓 공동대표를 비롯한 개발자들과 인연을 쌓을 수 있었죠. 그리고 카카오플레이스가 잘 안 된 덕분에 실패의 경험도 해봤어요. 그 경험이 창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됐네요.
카카오플레이스에 관한 실패 경험과 이 경험을 통해 얻으신 교훈이 궁금합니다.
▶ 카카오에서 소셜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친구의 맛집을 볼 수 있는 앱을 만들었어요. 사용자들이 좋아할 것이라 예상하여 사내 테스트만 하면서 8개월이나 걸려 앱을 출시했죠. 그러나 예상과 달리 호평을 이끌어내지 못했습니다.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은 “핵심 기능만 간단하게 만들어서 신속하게 시장에 출시하고 시장의 반응을 보며 개선하자”였어요. 이 교훈을 바탕으로 당근마켓의 초기 서비스인 ‘판교장터’는 2주만에 개발 후 출시하였고, 사용자 반응을 살피며 앱을 빠르게 업데이트했죠. 빠른 출시와 지속적인 업데이트가 IT사업의 성공률을 조금이나마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당근마켓의 초기 버전인 ‘판교장터’부터 현재의 당근마켓까지, 사업 확장 과정에서 인재영입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 판교장터 시절, 스누라이프 게시판에 채용공고를 올린 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입사하는 분들에게 회사 주식의 1%를 주겠다고 공고하였는데 ‘고작 1% 뿐이냐, 만일에라도 너희 회사가 정말 잘 되서 천억원의 기업가치가 된다고 한들 고작 10억 밖에 안 되지 않냐. 그럴 바에는 그냥 대기업에 가는 게 낫다’ 등 아주 냉소적인 반응을 마주한 적도 있었죠.
이처럼 인재를 구하기는 정말 어려웠어요. 회사 인지도가 없는 상황이라 초기에는 네이버와 카카오에서 일하며 알게 된 지인을 주로 영입했죠. 당근마켓 초기 멤버들은 2,3년간 최저 연봉을 받았는데 서로 믿고 의지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사내 프로젝트를 하며 경력을 쌓으면서 같이 사업을 영위할 동지를 구할 수 있었는데, 대학생 때 창업하면 이런 동지를 구하기 한결 쉬운 것 같아요. 당근마켓이 채용 공고를 통해 직원을 채용할 수 있었던 것은 창업하고 1년 정도 지난 이후였습니다.
창업은 성공여부가 불투명하기에 중간에 창업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대표님께서 끝까지 버티실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인가요?
▶ 당근마켓 전에 3번의 실패를 했어요. 배수진을 치고 사업을 한 것이 아니라 직장과 병행하며 사이드잡(side-job)으로 사업을 했기 때문이었어요. 실패하면 다니던 회사 다니면 되니 성공에 대한 절실함이 없었던 거죠. 사업이 성공하려면 타 경쟁사보다 훨씬 좋은 제품을 제공해서 사용자를 유입시켜야 해요. 그러나 사업을 사이드잡으로 여겼기에 이런 제품을 만들 정도의 충분한 노력과 시간을 기울이지 못했던 거 같아요.
이러한 과정을 겪으며 창업의 동기와 절심함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공동창업자들이 창업을 하는 동기가 일치하지 않거나 사업에 절실하지 않다면, 창업 도중 어려운 상황에 봉착하면 포기하게 돼요. 창업을 단지 경력을 위해 혹은 아이디어를 실험하기 위해 시도할 경우 백이면 백 다 실패하는 것 같아요.
당근마켓에 대한 선배님의 가치관과 비전, 목표가 궁금합니다.
▶ 회사의 성장 단계마다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사업 초기에는 더디더라도 지속적으로 성장했기에 사업을 키우는 그 과정 자체가 재밌었어요. 앱 개발 초기에 사용자와 긴밀하게 호흡하는 것도 즐거웠고요. 예컨대 사용자가 검색기능을 요구하면 검색기능을 추가하고, 판매내역을 확인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면 해당 기능을 추가하는 것이죠. 하지만 회사가 커지면서 책임감도 함께 커졌습니다. 현재 350명의 직원이 당근마켓에서 일하고 있는데, 회사가 잘 안되면 350명의 구성원들 모두 피해를 보게 되니까요.
개인적인 소망은 글로벌 시장에서도 당근마켓이 성공적으로 자리잡는 것이에요. 아직 우리나라에는 구글이나 페이스북 같이 세계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은 없는데, 꼭 당근마켓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고 싶어요. 그래서 현재 북미시장을 타겟하여 캐나다에 머물고 있어요.
당근마켓은 한국인의 ‘정’에 기반한 서비스라고 할 수 있는데, 해외에서도 ‘정’과 유사한 개념이 있는지,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가 통하는지 궁금합니다.
▶ 저도 국내에서 당근마켓이 성공한 것에는 동네주민 간의 정이 한몫 했다고 생각합니다. 더불어 ‘매너 온도’(당근마켓 고유의 신뢰 등급 제도로 사람의 신체온도에서 영감을 받아 36.5에서 시작함) 또한 거래 성사에 큰 역할을 해주었어요.
그러나 해외에서는 정이라는 개념 자체를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그리고 매너온도라는 개념도 낯설어해 ‘Karrot score’라는 시스템으로 바꾸었죠. 하지만 지역 커뮤니티에 대한 애정은 오히려 한국보다 강한 것 같기도 해요. 당근마켓이 영국에 처음 진출했을 당시 현지인들이 대형 프랜차이즈보다 로컬 가게가 잘 되는 것을 더 좋아했어요. 이웃 간 중고거래를 비롯한 교류도 많았죠.
이런 걸 보면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는 문화권이 다르더라도 비슷한 것 같아요. 서구 문화권에서도 가까운 거리의 중고거래를 선호하고, 동네주민과 거래하면 더 할인해주는 경향이 있어요. 다만 그러한 욕구를 표현하는 방식이 문화에 따라 다르기에 마케팅 방식이나 메시지가 달라지는 것이죠. 지난 1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문화권의 차이에 대한 감을 잡는 중이에요.
당근마켓이 추후에 어떠한 회사로 자리매김했으면 좋겠는지 궁금합니다.
▶ 앞으로도 사용자들의 일상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만드는 회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불편한 점을 원활히 해결해주며, 일상적으로 사용하고 싶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가 되고 싶어요.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할 때 ‘구매자와 판매자가 집 근처에서 만나, 사기 없이 간편하게 물품을 거래할 수 있으면 좋겠다’라는 막연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지만, 많은 사용자들의 니즈를 충족시켜줬어요. 이전에는 이를 해결할 수 있는 서비스가 없었죠. 그리고 로컬 커뮤니티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고, 동네 근처에서 월세방도 구하고 중고차도 사고, 동네 상점에서 편하게 결제하여 배달도 오게 하는 등 로컬에 관련된 다양한 사업도 진행 중에 있어요.
이전에는 지역 주민들에게 전달되는 로컬 광고 중에서 전단지 만한 광고 매체가 없었어요. 만약 당근마켓이 지역마다 유저들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으면 로컬 광고도 (당근마켓과 같은 플랫폼 상) 모바일을 통해 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휴대폰을 보면서 보내는 시간이 압도적으로 많기 때문에, 당근마켓 지역광고가 기존 전단지 방식보다 효과가 10배 이상 좋을 거라는 가정이 있었죠. 그래서 지역광고 서비스를 시작하게 되었고 현재는 수많은 동네 사장님들이 가게 홍보를 위해 당근마켓 지역 광고를 이용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후배 경제학부 학부생들에게 한 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 진로에 대한 고민이 된다면 관심있는 업종에서 짧게 나마 직접 일해보면 진로 결정에 도움이 될 거 같아요. 직접 경험을 하는 것만큼 확실하게 아는 방법은 없는 거 같아요. 저도 대학생 때 애널리스트라는 직업에 관심이 생겨 증권회사 리서치센터에서 2개월 동안 인턴 생활을 해본 적이 있어요. 하지만 애널리스트 삶을 바로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와 애널리스트는 안 맞는구나’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어요. 또 당시 IT 스타트업에서도 방학 때 인턴을 했는데, 그때는 일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재밌었고 인턴이지만 회사에 조금이나마 기여한다는 생각도 들었죠.
지나고 나면 대학생 시절이 대단히 소중해요. 다양한 경험도 할 수 있고 실패에 대한 리스크도 상대적으로 적은 나이고요. 저는 레스토랑 사업을 꿈꾸던 적이 있어서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2개월간 일을 했었어요. 단순 서빙 일이었지만, 홀 매니저는 어떻게 매장을 매니징하고, 주방 책임자는 동일한 음식 품질을 어떻게 유지하는지가 보였죠. 하지만 ‘내가 이걸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고 자문하였는데,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게 돼서 레스토랑 사업은 마음을 접었어요. 대학생 시절이 향후 진로에 대해 제일 고민을 많이 하는 시기이니만큼, 진로나 직업에 대한 막연한 생각들을 실제로 최대한 많이 경험을 해보시면 좋을 거 같아요. 직접 경험을 하면 답을 확실히 알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게 많았던 거 같아요.
기획/편집: 유재서, 황세희
진행: 김성진, 이진현, 주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