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 위원장, 고학수 동문과의 인터뷰

2024-09-02l 조회수 452



[Alumni Interview]

민간, 공직, 학계에 진출해 계신 경제학부 동문들을 인터뷰합니다. 동문들의 학부생 시절, 진로 선택 동기, 현업에서의 고민, 후배 경제학부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 경제학부 학부생에게 폭넓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동문 간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Alumni Interview를 경제학부 홈페이지에 매달 하나씩 게재할 예정입니다.



싱그러운 초록빛이 가득한 2024년 5월, 개인정보위원장 고학수 동문(경제학부 85학번)을 인터뷰했습니다.

어떠한 학부 생활을 보내셨나요? 학부생 때 어떤 목표와 비전을 가지셨었는지 궁금합니다. 
▶ 제 대학교 재학 시절에는 대학교 1, 2학년 때까지 내가 어떤 사회인이 될지, 졸업 후에 무엇을 할지와 같은 고민들을 대체로 안 하는 분위기였어요. 그래서 저는 현재 대학생들처럼 구체적인 고민들보다는 훨씬 더 큰 틀의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라는 생각보다, 내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갈지에 대해서 더 생각했었어요. 오늘날 대학생들은 당장 졸업 후에 무엇을 할지 고민하는데 급급한 것 같은데, 그보다 조금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른 각도의 질문을 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을 것 같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기억에 남는 동아리 활동이나 강의가 있으신가요?
▶ 저는 학교를 다니면서 동아리를 굉장히 많이 했었어요. 풍물패, 탈춤, 여행 동아리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많은 활동들을 했는데요. 지금 생각해보면, 일련의 활동을 통해 우리나라가 어떤 전통을 가진 나라며, 우리나라 땅덩어리에 깃든 정신이 무엇인지를 체화해나간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 과정을 통해 나의 정체성인 ‘한국인’으로서 우리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수행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도 자연스럽게 이어졌어요.
  기억에 남는 강의는 학부생 4학년 때 법대 과목으로 새로 개설된 ‘법과 경제’입니다. 제가 대학생일 때는 데모가 자주 일어나는 등 전반적으로 사회가 매우 혼란스러웠어요. 그래서 강의실 안에서 듣는 경제학 강의와, 강의실 밖에서 피부로 와닿는 사회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죠. 그러다 친구의 권유로 ‘법과 경제’라는 과목을 듣게 되는데, 경제학의 방법론이 훨씬 구체적으로 현실 문제에 적용되어서 답을 주는 것 같은 인상을 강렬하게 받았어요. 경제학이 뜬구름을 잡는 학문이 아니라, 실제로 현실에 응용되고 적용이 되어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학문이라는 것을 알고 법경제학 영역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이 과목은 제 인생을 바꾸는 과목이 됩니다.

자교에서 석사 학위를 취득하신 후 미국 컬럼비아 대학 로스쿨에서 법학전문석사를 취득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쩌다 미국 유학을 가기로 결심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법경제학에 관심이 생기고 난 후, 이 영역을 제대로 수학하기 위해서는 법, 경제 양쪽 영역에서 일정 수준의 공부가 필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법 경제학 영역의 연구가 제일 활성화된 곳이 미국이었기에, 국내에서의 대학원 공부보다는 미국에서 공부를 하는 것이 나을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법과 경제 양쪽 영역의 공부를 미국에서 하기로 마음 먹은 후 미국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당시에 미국으로 가면서도 교수를 하겠다거나 어떤 직업을 갖겠다와 같은 구체적인 생각은 별로 없었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국제 무대에서 경험을 쌓은 뒤 그 경험을 가지고 다시 한국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다 정도의 추상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죠.

법률전문가로서 필요한 자질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 법률전문가를 영어로 했을 때, expert라고 보다는 professional이라고 하는데요. 이 프로페셔널의 덕목 중에 가중 중요한 게 ‘integrity(진실성, 청렴, 무결성)’라고 생각합니다. integrity라고 함은 진실성, 책임성과 같은 맥락의 단어를 합친 것이죠. 법률전문가로 예를 들어 보면, 무언가를 물어보면 밤을 새서라도 뭔가 나름의 답을 하는 사람, 적어도 본인의 시각에서는 진실된 얘기를 하고 거짓말을 안 하는 사람, 책임감이 직업에서 오는 책임감이 남다른 사람이 결국은 신뢰를 받을 수 있어요. 그것은 가장 직접적으로는 자기 고객으로부터의 신뢰고, 동료 집단으로부터의 신뢰까지도 포괄하게 됩니다. 그러한 신뢰를 받는데에 있어서 intergrity는 매우 중요한 자질이죠. 또한, 변호사는 자신의 일을 끝까지 책임지고 물어져야 하는데 이와 관련해서도 intergrity가 필요합니다. 많이들 알고 계시겠지만 변호사는 자신의 맡은 일은 전부 책임을 가지고 수행해야 하기에 퇴근 시간이 일정하지 않기도 하죠. 변호사의 책임감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말씀드리자면, 제가 1년차 변호사였을 때, 미국에서 서울로 서류를 보내야 하는 일이 있었어요. 보통은 그냥 서류를 보내고 잘 도착했는지만 확인하겠지만, 변호사의 책임은 서류가 정확히 언제까지 가는지 전부 책임져야 해요. 저는 1시간 간격으로 서류가 어디 공항에 있고, 비행기는 탔는지 등 끊임없이 모니터링했어요. 즉 내 손을 떠난 순간에도, 내가 계속 그 서류와 같이 움직이는 것 같은 수준의 관리를 하고 책임을 느껴야하는 거죠. 그러한 변호사의 자질들을 모두 포괄해서 integrity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교수님으로 부임하시기까지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 저는 항상 막연히 한국인으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미국에서 공부를 마친 후 여러 선택지가 있었는데, 저는 국제 경험을 쌓고자 미국 로펌에서 일하는 것을 택했죠. 그후로 자연스럽게 한국 로펌으로 오게 됐고, 아주 우연한 기회로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기회가 주어졌어요. 그래서 연세대학교 전임 교수로 일하다, 연세대학교에서 강의를 한지 2년 정도 됐을 때 로스쿨 제도가 도입되며 서울대학교에서 강의를 할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제가 처음 말했듯 항상 넓은 시야로 폭넓게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에 다양한 기회가 주어졌고, 그 기회를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서는 어떤 일을 하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넓게 보면 두 가지를 역할을 수행합니다. 첫째로, 개인정보법과 관련된 넓은 의미의 법과 제도를 마련하고, 개인정보와 관련된 영역의 청사진을 마련하는 역할을 합니다. 또다른 역할로는, 그렇게 마련된 정책이나 법 제도에 대해서 집행을 하는데, 가장 크게는 수검자들이 법을 지키는지 모니터링하고 조사하고 행정처분을 내립니다. 실제로 수검자들한테 제일 크게 와닿는 거는 위원회를 통해서 법을 어기면 조사 대상이 되고, 과징금 부과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최근 1~2년 사이에는 워낙 인공지능이 큰 사회적인 변화의 화두가 돼서 인공지능 관련된 정책이나 제도를 마련하고, 인공지능 관련된 서비스를 하는 기업들에 대해서 모니터 하는 게 굉장히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죠.

현재 새로운 기술들이 되게 많이 개발되고 있는데, 어떤 자세가 새로운 기술에 제도적으로 대응할 때 필요한지 궁금합니다.
▶ 요즘 교육에서 "융합", "통합" 등의 키워드를 강조하는데 새로운 영역에서는 그런 자세가 훨씬 더 많이 필요해요. 예를 들어 인공지능과 같은 경우, 인공지능을 기술적으로 어떻게 작동시킬지에 관해 내가 실제로 코딩을 하지 않더라도 작동 원리를 알려고 하는 자세나 태도가 필요하죠. '나는 문과니까, 나는 관련 교양을 한 번 들은 게 다니까 인공지능을 잘 몰라'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내가 모르는 영역에서 인공지능은 공학적으로 어떻게 작동하는 것인지 알고 싶다'처럼요. 이런 식의 자세는 모든 분야에 있어서 적용될 수 있어요. 법전만 쳐다보는 법률가가 아니라 실제로 어떤 원리에서 법률이 구성되는지 연구하는 법률가, 코딩만 하는 엔지니어가 아니라 그것이 사회적으로 어떤 함의를 가질지 고민하는 엔지니어가 있을 수 있겠죠. 융합적으로 사고하는 능력과 잘 모르는 분야도 공부하고자 하는 호기심 등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개인정보기관의 국제적인 협력이나 교류에 있어 어떠한 점이 중요한가요?
▶ 개인정보 영역의 법은 되게 새로운 법이기도 하지만 순식간에 글로벌화된 법이에요. 예를 들어 우리나라에서 개인정보보호법이 별도의 법으로 만들어진 게 2011년이에요. 그러니 10년 남짓밖에 안 된 법치고는 사회적으로 아주 순식간에 주목받은 법인데요, 전 세계적으로 몇몇 나라들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지난 한 10년에서 15년 사이에 만들어졌어요. 여러 나라들이 모여서 법에 대한 각기 다른 사례들과 노하우를 공유하는 자리들이 상당히 많이 있는데요. 물론 나라에 따라 일부 다르지만 법 제도와 실제 사례들이 참고할 것이 많고, 서로 공유하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에 국제 논의가 활발히 진행이 되고 있어요. 또한 최근 1~2년 사이에는 인공지능이 국제적인 맥락에서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졌는데 그러한 논의에 한국이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해야 되고 또 실제로도 주목을 많이 받아요. 전통적인 선진국인 미국하고 유럽을 벗어나서 다른 지역을 보면 가장 먼저 동아시아 지역이 이제 눈에 띄는 거죠. 특히 한국은 다이나믹한 나라라는 인식이 많기 때문에 우리나라 사례가 많이 주목을 받아요.

법원에서 선례가 없는 사건은 사회적으로도 주목을 많이 받는 편인데, 그런 상황에서 법경제학이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을 주는지 궁금합니다.
▶ 구체적인 상황을 예로 들어보면, 2022년 쯤에 제가 헌법재판소에 참고인으로 증언을 하러 간 적이 있어요. 당시 사안은 사형 제도가 위하력이 있나, 즉 억제효과가 있냐는게 질문이었어요. 사형제도가 억제 효과가 있으면 효과가 있다는 뜻이니까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할 정당성이 확보가 되는 반면, 억제 효과가 없으면 현실적인 효용성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왜 사형제도를 유지해야 하는가의 문제가 생기게 돼요. 이와 관련해 헌법재판소에서 증언을 요청받았는데 그때 이후로 지금까지 답이 안 나오고 있는 구체적인 사례로 볼 수 있죠.
  이 사안은 더 넓게 보면 범죄에 대해 처벌을 하면 범죄가 줄어드는 효과가 있는가, 경찰력을 어떤 식으로 활용을 하면 범죄를 더 효과적으로 줄여나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어질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옛날에는 파출소가 있었는데 현재는 파출소 여러 개를 묶어놓은 지구대로 바뀌었거든요. 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이 중 어떤 방식이 범죄를 줄이는 데 더 도움이 되는지를 연구하는 게 법 경제학이에요. 즉 법 경제학은 선례가 없는 사건에 단초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평소 즐겨보는 매체나 저널이 있으신가요? 이중 학부생들에게 추천할 만한 매체가 있다면 알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저는 제가 직접 돈을 내고 온라인 구독하는 게 3개가 있는데, 이코노미스트, 뉴욕타임지, 그리고 월스트리트저널입니다. 영어 공부도 될 뿐만 아니라 더 넓은 시야를 갖출 수 있도록 도와주기 때문에 외국의 인지도 있는 신문들을 읽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학부생들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감명 깊게 읽으신 책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대학 시절에 단편적이라도 고전을 조금씩 기회 될 때 보면 좋을 것 같아요. 고전은 시간이 100년, 150년, 혹은 더 오래됐는데 살아남은 책들인 만큼 시간이 지나도 의미 있는 메시지를 줍니다. 저 또한 대학이나 대학원 시절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여전히 일부 내용 혹 일부 표현들은 가끔씩 생각하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회인이 되면 고전은 볼 기회가 많이 없어서, 학창 시절에 조금이라도 접할 수 있을 때 접하시길 바랍니다. 번외로, 고전은 아니지만 법경제학 관련 책을 추천해보자면 Robert D. Cooter, Hans-Bernd Schäfer의 ‘Solomon's Knot’을 추천하고 싶네요.

마지막으로 학부생들한테 인생 선배로서 해주고 싶은 한 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 지금까지도 계속해서 한 이야기이지만, 세상을 넓은 시야로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어떤 직업을 가지느냐에 대한 고민과 별개로 어떤 종류의 사회인이 될 것이냐, 어떤 삶을 살 것이냐에 대한 고민도 많이 하고요. 또한 경제학부 학생들인만큼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가슴’도 매우 중요한 자세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사회과학도로서, 경제학도로서, 사회를 바라보는데 핵심적인 자세예요.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사회 현상을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냉철한 이성을 통해 경제학의 방법론적인 측면도 충분히 겸비할 수 있으면 매우 훌륭할 것 같습니다.

학부생들이 어떤 종류의 삶을 살고 싶은지 아니면 어떤 종류의 사회인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하면 좋겠다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그런 고민을 해나가셨는지 궁금합니다.
▶ 저 같은 경우에는 학교 생활에는 조금 덜 충실한 반면 (웃음) 학교 밖에서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어요. 1학년 때 농활로 전라도 시골에 갔다 오면서 한국의 시골이 어떤지 생각하고, 몸소 체험도 했고요, 어느 방학 때는 박완서 토지와 태백산맥을 읽느라 방학이 통째로 날아간 적도 있어요. 토지를 읽으면서 멀지 않은 과거에 한국 사회가 어땠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었고, 그러한 작은 계기들이 쌓여서 저의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만들었죠. 그래서 저는 미국에서 로펌 변호사로 일하면서도 머리 한 켠에 '나는 한국 사람이다'라는 의식이 굉장히 컸어요. 미국에서 변호사 생활을 그만두고 한국에 온 직접적인 계기도 '나는 한국인이고 결국은 한국에서 살아야 돼'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제가 현재 가지고 있는 직업도 - 교수나 공직자같은 경우 - 그 직업을 위해 살아오진 않았지만 제가 공부해온 것이 정책학 영역의 법 경제학이고, 항상 사회 현상에 관심이 많았으니 자연스레 이런 일을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관심을 가지는 사안에 대해 정책적인 입장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하는 시뮬레이션을 많이 돌리는데 이것이 현재 공직을 맡아 일하는 데에 도움이 많이 되는거죠.




기획/편집: 이선우

진행: 이선우, 박세현, 이유빈
제작: People of Econom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