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외경제정책 수립의 중추, KIEP 원장 김흥종 동문과의 인터뷰
[Alumni Interview]
민간, 공직, 학계에 진출해 계신 경제학부 동문들을 인터뷰합니다. 동문들의 학부생 시절, 진로 선택 동기, 현업에서의 고민, 후배 경제학부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 경제학부 학부생에게 폭넓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동문 간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Alumni Interview를 경제학부 홈페이지에 매달 하나씩 게재할 예정입니다.
따스한 봄이 기다려지는 2023년 2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의 원장 김흥종 동문(경제학부 83학번)을 만났습니다.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학교 생활을 하셨나요?
▶ 20대 초반은 어떤 인생을 살아갈지에 대한 고민이 많을 시기라고 생각해요. 저도 여러가지 생각이 많았는데, 주변을 둘러보면 고시 공부를 하거나, 유학준비를 하거나, 학생 운동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 많았어요. 저는 일단 경제학 공부를 해보면서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내면의 소리를 듣기로 했답니다. 경제학에 대한 학문적 깊이를 갖추고 싶어서 일단 대학원에 진학했고, 계량경제학으로 석사논문을 썼어요.
사람은 언제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환경 속에 있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이후 우연히 영국 옥스퍼드에서 2년간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겨, 1993년에 가서 2년간 영국에 머물다가 귀국했습니다. 외국에 가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네들의 관심 주제였어요. 당시 공산권 몰락 후 유럽은 새로운 질서가 형성되던 시기였는데 독일통일 후유증, 유고슬로비아 해체 이후 세르비아 민족주의 부상, 미국의 대중동 군사작전 등 당시 숨가쁘게 진행되던 글로벌 현안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하는 분위기가 충격적으로 다가왔고 또 한편으로는 부럽기도 했어요. 저의 80년대는 이런 주제를 논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지요. 평생을 알고 지내는 친구들을 만났고, 글로벌화된 인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기회였습니다.
기억에 남거나 도움이 된 수업이 있나요?
▶ 전공과목 중에서는 정운찬 교수님의 거시경제학과 이준구 교수님의 미시경제학/경제수학, 양동휴교수님의 경제사 강의가 기억에 남아요. 경영대에 가서 포트란 수업도 수강하고 학교 특강을 통해 SPSS도 배웠어요. 이처럼 사회를 분석하는 유용한 도구들을 배운 것이 나중에 공부할 때도 도움이 되었지요. 대학원 석사 논문을 쓸 때 몬테카를로 실험을 해 본 것이 기억납니다. 몬테카를로 실험은 가상의 여러 상황에서 시뮬레이션을 해서 각 상황의 결과를 추론해 보는 실험으로 계량 추정량의 특성을 판별하는데 유용한 도구였어요.
또한, 전쟁과 평화라는 외교학과 강의도 좋았습니다. 당시 새로 부임하신 젊은 교수님들이 돌아가며 진행하신 수업인데 핵 이슈를 비롯한 여러 국제관계를 다루었어요. 관심이 가는 흥미로운 내용이었어요.
평소 즐겨보는/추천하는 매체 및 저널이 있나요?
▶ 단연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를 추천합니다. 우선 이코노미스트는 수준 높은 단어로 아름다운 문장을 구사하고 있어요. 영국과 관련된 이슈에서는 종종 국수주의적 시각을 보이기는 하지만, 대체적으로 중도 우파의 온건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으며 국제 경제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많이 됩니다. 또한 Financial Times의 오피니언 란에도 괜찮은 글들이 많아요.
국제 관계에 관심이 있는 학생들은 Foreign Affairs에 실린 국제 관계 및 통상과 관련한 글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국제 문제의 숨막히는 전개 상황을 서방 국가들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어요.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을 직장으로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저는 직장과 박사 과정을 병행하느라 박사 졸업을 늦게 했습니다. 보다 공부를 집중할 수 있는 환경에 가고 싶어 2000년에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크라이스트 처치(Christ Church) 칼리지에 명예펠로우로 갔죠. 그런데 2001년에 KIEP에서 일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게 되었고, 제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아 제안을 수락하게 되었어요.
KIEP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국책기관으로 기본적으로 국제경제관련 정책을 연구하는 곳이에요. 저는 이곳이 이론보다 정책에 방점이 있다는 것이 마음에 들었고, 공익을 위해 연구한다는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어요. 학계와의 교류는 물론이고 언론과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 국민과의 소통도 활발하게 하고 있어요. 또한 정부 의뢰를 받아 정책 수립의 근간이 되는 보고서도 작성합니다. 이 일들이 제 적성과 잘 맞아서, 20년 넘게 KIEP에 재직해 왔습니다. 자부심과 보람을 가질 수 있는 행복한 시절이었어요.
KIEP에서 일하고자하는 학부생들이 갖추어야 할 자질은 무엇인가요?
▶ 우선 연구기관에서 일하기 위해서는 학문적인 호기심이 많아야 하는데, 그 중에서도 KIEP는 대외 경제 이슈에 관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기에 일단 학부생들은 전공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하며, 필요에 따라서는 박사 과정이나 로스쿨에 진학하여 커리어를 쌓을 수도 있겠죠. 그러나 이와 함께 여러 국제회의나 학회 활동을 모니터링하면서 앞에서 언급한 다양한 분야의 잡지와 책을 읽고 전문가들과 대화를 통해서 세계 속 한국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 명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또한 사소해 보이지만 KIEP의 잦은 해외 출장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해외에서 지내는 것에 불편함이 없고, 시차 적응이 빨라야 한답니다. 순발력과 스트레스 조절 능력, 긍정적 사고도 중요하죠.
국제통상 전략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
▶ 국제통상은 다른 분야와 겹치는 부분이 많습니다. 실증경제학을 공부하며 여러 이슈를 연구하던 중 국제통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어요. 중국의 WTO 가입, EU의 중동구 확대, 한국의 대미, 대EU FTA 등 2000년대를 수놓은 큰 대외통상 과제에 대해 연구와 협상 지원으로 대응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국제통상은 우리나라가 당장 당면하고 있는 각종 양자 및 다자 통상협상이나 미국 등 주요국의 통상정책에 대한 대응 등 해결해야 할 과제에 대응하는 측면이 강조됩니다. 통상 협상은 일종의 종합예술 같아서 여러 전공 분야와 연결됩니다. 예컨대 실증경제학뿐만 아니라 로스쿨에서 국제 통상법을 공부한 후 대외경제정책을 연구할 수 있죠. FTA협상은 법학자와 경제학자가 협력해야 하는 대표적인 국제 통상 분야예요. 국제 통상의 범위는 굉장히 넓고, 다양한 사람을 필요로 합니다.
한국의 GDP 대비 수출입 비율은 80%를 넘습니다. 독일, 네덜란드와 함께 큰 나라로서는 세계에서 손꼽히게 높은 수준이죠. 따라서 한국에게 대외경제는 굉장히 중요할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지금 하고 있는 전공과 무관하게 많은 후배들이 국제통상에 관심을 가져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대외경제정책 연구 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점은 무엇인가요?
▶ 어떤 이슈가 화두에 오를지를 예상해보고 미리 준비해야 합니다. 팬데믹처럼 예측이 아예 불가능한 문제도 있지만, 금리 인상이나 공급망 변동처럼 어느정도 예측 가능한 문제도 많아요. 사람들은 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지만, 물밑에는 항상 문제를 조용히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복잡한 문제가 커지기 전에 대응책을 모색하는 것이 바로 KIEP같은 기관이죠.
또한 예민한 이슈를 다루는 만큼, 말할 때나 글을 쓸 때나 단어 선택에서 유의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대만’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되는가, acknowledge와 understand 중 어떤 단어가 적합한지 생각해야 합니다.
KIEP 원장으로서 가지신 목표는 무엇인가요?
▶ 우리나라는 선진국이 되었지만 우리가 선진국 시민의 마인드를 가지고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과 경험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습니다. 이제는 대한민국이 진정한 선진국으로서의 위상을 확립하는 데에 KIEP이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서 국제사회에서 어떠한 역할을 맡을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필요합니다. 국제개발원조를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지, 더 나아가서 글로벌 공공재 생산에 어떻게 기여해야 하는지 등.
그래서 2020년 원장에 취임하자마자 기관의 목표를 바꾸었고, 국제개발협력센터를 만들었습니다. 디지털무역 등 신통상의제 연구를 강화해야 한다고 생각하여 신통상연구팀을 신설했습니다. 또한 KIEP가 당면한 중요 과제 중 하나는 경제안보 연구를 강화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2021년부터 경제안보 TF를 출범시켰고, 작년에는 세개의 팀으로 구성된 경제안보전략실을 만들어 가동하고 있습니다. 최근 화두인 탄소중립에 대한 연구도 강화했습니다.
더불어 해외사무소를 확대하였습니다. 지역연구를 잘 하려면 현지 사람들과 연구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저는 연구의 절반은 네트워크라고 생각해요. 이 노력의 일환으로 인도 뉴델리에 사무소를 개설했습니다. 우리가 북경사무소를 1995년에 만들었는데 27년만에 2호를 열었죠.
과거에는 우리가 국내 이슈에만 주로 관심이 있었는데, 앞으로는 글로벌 이슈에도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컨대 글로벌 공급망을 어떤 방식으로 재편할 것인지, 전략적 해외투자는 어떠한 방식으로 해야 할지 등에 대해 연구하고 토론해야 합니다. 앞으로도 우리나라가 글로벌 중추국가로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고양할 수 있고, 대외위험에 대해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대응 역량을 키우기 위한, 더욱 수준 높은 정책연구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커리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무엇인가요?
▶ 한국-EU FTA 협상 시 자문을 했던 경험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협상이 시작되기 2년전부터 KIEP에서는 FTA 관련하여 분야별 정책 연구를 선제적으로 하고 있었어요. 그렇기에 FTA협상 시에 유리한 위치에 있을 수 있었죠. 협상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는 미리 준비되어 있는 것, 즉 선제적으로 충분한 연구가 되어 있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미리 해 온 연구를 바탕으로 정부에 유용하고 적확한 자문을 할 수 있었습니다.
한국-EU FTA 이외에도 여러 국제 통상 사안에 대해 정부와 협력할 때가 많은데,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정부가 정책을 잘 수립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자부심을 느낍니다.
마지막으로, 후배 경제학부 학부생들에게 한 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 글로벌한 시각을 가진 사람, 내가 세계에 어떻게 기여하고 활동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이 되세요. 좁게만 생각하지 말고 지구촌에서 나의 역할에 대해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또한 개인의 꿈과 행복 그리고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이 나와 잘 맞는지 고민해보세요.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잘 모르는 경우가 많은데, 자기 자신을 꾸준히 알아나가는 탐구의 과정은 중요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탐구와 관찰은 평생을 통해서 하겠지만, 특히 20대 때 멈추지 말고 해보면 좋겠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실제 경험도 중요합니다. 일단 시도해보세요.
마지막으로, 저는 행복의 3가지 조건은 좋은 책, 좋은 음악 그리고 좋은 친구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책과 음악과 친구가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좋은 책, 좋은 음악, 좋은 친구가 옆에 있을 때 여러분의 인생은 행복하고 풍요로워집니다. 학부생 여러분들이 행복하고 풍요로운 일상을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럴 권리가 있습니다.
기획/편집: 이진현, 주민정
진행: 김성진, 이진현, 주민정
제작: People of Economic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