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서구권 대학 교수 최초로 슘페터상을 수상한 경제학부 석좌교수, 이근 동문과의 인터뷰
[Alumni Interview]
민간, 공직, 학계에 진출해 계신 경제학부 동문들을 인터뷰합니다. 동문들의 학부생 시절, 진로 선택 동기, 현업에서의 고민, 후배 경제학부생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담아 경제학부 학부생에게 폭넓은 진로 탐색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더불어 동문 간 교류가 활성화되기를 바라며 Alumni Interview를 경제학부 홈페이지에 매달 하나씩 게재할 예정입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2023년 5월의 화창한 날, 비서구권 대학 교수 최초로 슘페터상을 수상한 서울대 경제학부 석좌교수, 이근 동문(경제학부 79학번)을 만났습니다. 인터뷰 곳곳에 경제학부생들을 향한 그의 따스한 조언이 담겨 있습니다.
어떤 학부생활을 보내셨나요?
▶ 민주화가 되기 이전, 흔히 암흑기라고 불리는 79년도에 대학에 입학했어요. 그 해에 박정희 전 대통령이 피살되었고, 학교 캠퍼스에는 경찰관이 상주했죠. 당시 대학생들 사이의 관심사는 독재 정부를 타도하겠다고 데모하는 것이었어요. 학생들은 underground circle(80년대에는 동아리를 서클이라 칭했다)을 만들어서 정권에 대해 비판적인 도서를 읽기도 했고, 적극적으로 반정부 시위를 주도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겠지만 학생 신분을 감추고 공장에 위장 취직해서 노동운동을 시작하는 학생들도 있었죠.
나 또한 이러한 시대 흐름과 무관하지 않았기에 인문대 선배들이 주도하던 ‘현대사연구회’라는 서클에 들어가 마르크스주의 저서 등 체제 비판적인 서적을 접하며 세미나를 했어요. 학내에서 데모하다가 잡혀서 경찰서에 끌려가 취조를 받아본 적도 있죠.(웃음) 학생운동권에 참여하던 도중 모두가 노동운동을 해야 할 만큼 한국의 상황에 열악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경찰서에서 취조받으며 위축되고 나약해지는 자신을 보고 나에게 혁명가가 될 자질은 없다고 느껴서, 노동운동이나 혁명보다는 내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게 되었습니다.
서울대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수료 후, 미국 UC Berkeley에서 박사 학위를 받으셨다고 들었습니다. 대학원으로 UC Berkeley를 선택하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 대학교에 입학할 때부터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고 이를 위해 경제학을 공부하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유학을 갈 때도 소위 정치경제학이라고 일컫는 좌파적인 경제학을 공부하고자 했습니다. New Left 경제학을 공부할 있는 몇 안 되는 대학 중 한 곳이 UC Berkeley였기에, 박사 과정을 이곳에서 하게 되었어요. 물론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서 New Left 경제학을 연구하는 학우들도 있었죠. 국내에서 연구를 이어나간 이들과 차별성을 가지기 위해 한국에서는 연구하기 어려웠던 분야인 경제체제론을 공부하기 시작했죠.
경제체제론은 자본주의가 아닌 중국, 소련, 베트남 같은 사회주의 경제체제를 연구하는 분야예요. UC Berkeley는 중국 전문가, 소련 전문가들이 있었기에 경제체제론을 연구하기에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고 할 수 있죠. 그래서 UC Berkeley에서 New Left 경제학, 마르크스 경제학이 아닌 사회주의 국가들의 경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어요.
*New Left Economics: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병폐를 지적하고 소득분배의 불균형, 노동자의 탈숙련화, 소외현상 등을 입증하는데 초점을 맞춘 경제학이다.
경제발전론, 경제추격론 등에 학부생 때부터 관심이 많으셨나요? 경제추격론이라는 다소 생소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 앞서 말했듯이 학부생 때부터 경제발전에 이바지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죠. UC Berkeley에서 경제체제론을 공부하며 본격적으로 공산주의 경제체제를 연구하기 시작했습니다. 대표적인 두 공산국가인 중국과 소련 중 어떤 국가를 중점적으로 연구할지 고민을 잠시 했었어요. 그 당시에 중국이 막 개혁개방을 시작하고 있기도 했고, 한자 및 동아시아 문화에 더 익숙하기에 중국 연구에 비교우위가 있을 것이라 판단했죠. 그래서 중국 경제체제를 선택해 연구했고 박사학위 논문에서도 중국 경제를 다루었어요.
서울대 교수로 부임한 이후 대학원 학생들을 지도하고 같이 세미나를 하여 가면서, 후발국이 어떻게 하면 선발국을 따라잡느냐 하는 주제 즉 경제추격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 주제로 쓴 논문이 인용을 많이 받는 등 좋은 성과를 내었어요. 그래서 이 연구에 강점이 있음을 깨닫고 경제추격론을 연구하기 시작했죠.
한국인은 경제추격론 연구에 있어 비교우위가 있어요. 한국만큼 눈부신 경제성장을 이룬 나라를 찾아보기 힘들잖아요. 한국에 대해 잘 모르는 외국인이 외재적인 시각으로 한국의 경제발전을 연구하는 것과 한국인이 한국의 경제발전을 연구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어요. 그렇기에 경제추격론 연구에 있어서 한국인이라는 것은 굉장한 강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교수님의 주 연구분야인 경제추격론, 경제발전론, 비교경제체제론은 많은 학부생들에게 생소한 분야인 것 같습니다. 각각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해주세요.
▶ 경제추격론은 경제발전론의 한 분야로 후발국에 의한 선발국의 추격•추월 현상을 다룹니다. 특히 나는 중진국 함정에 대해, 많이 연구하였는데, 중진국 함정이란 후발국의 1인당 소득이 미국 대비 40%를 넘어가지 못하고 일정 수준에서 갇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중진국 함정을 벗어난 국가는 지난 50년 간 13개에 불과해요. 이들 국가가 어떤 특징을 가지는지, 후발국들이 선발국을 추격•추월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초점을 맞추는 분야예요.
비교경제체제론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사회주의 등 서로 다른 경제 체제를 비교하고 고찰하는 학문입니다. 서울대 경제학부에서 저와 김병연 교수가 비교경제체제론을 많이 다루었는데, 저는 중국의 경제 체제를, 김병연 교수는 소련의 경제 체제를 연구했습니다.
경제발전론과 경제추격론이 원래 있던 경제학의 분야인가요?
▶ 국가의 경제발전을 다루는 경제발전론이라는 분야는 원래 있었습니다. 나는 후발국이 선발국을 따라잡거나 넘어서는 현상 즉 경제 추격에 주목했기에 catch-up 즉 추격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죠.
내가 추격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사용한 것은 아닙니다. 모시스 아브라모비츠(Moses Abramovitz)라는 경제학자의 논문 ‘Catching Up, Forging Ahead, and Falling Behind’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이 단어를 쓴 바 있어요 . 한국어로 하면 추격, 추월, 추락이라고 할 수 있죠. 이 논문은 전후에 유럽에서 여러 국가들 중 성공적으로 추격, 추월 중인 국가들과 추락하고 있는 국가들을 분석하고 있어요.
내 관심은 유럽 국가가 아닌 후발국들, 특히 세계 2차 대전 이후 독립한 나라들의 발전에 있었기에 아브라모비츠와는 달리 후발국들의 경제 성장을 연구했습니다. 기존의 경제발전론에 나의 색을 입혔다고 볼 수 있겠네요.
경제추격론이라는 학문 분야에 대한 전망을 어떻게 보시나요?
▶ 경제추격론은 발전 가능성이 큰 학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직까지도 많은 저개발국이 빈곤에서 벗어나지 못하거나, 선진국과의 격차를 좁히지 못하는 이유가 경제학적으로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았어요. 후발국의 경제성장은 경제학적으로 미해결된 과제이고 세계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주제이죠.
저개발국의 성장을 위해 막대한 원조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성장이 요원해 보이는 저개발국이 많습니다. World Bank 같은 국제기구들은 저개발국이 시장 개방을 하고 자본시장자유화를 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것은 잘못된 처방이에요. 한국만 봐도 타 국가와의 FTA 체결은 상당한 발전을 이룬 나중 단계에 발생했어요. 한국은 국내 시장을 잘 보호하며 전략적으로 산업을 육성한 후 나중에 개방했기에 성공적으로 경제 발전을 이룰 수 있었어요. 그러나 기존 선진국의 시장 개방 정책과 결을 달리하는 처방—예컨대 한국이 택한 전략적인 시장 개방 정책—이 일반적으로 맞을 수 있냐에 대해서는 아직 합의가 없어요. 그 타당성을 입증하고 그 처방을 널리 보급시키는 것이 경제추격론의 사명입니다.
칼럼 중심 언론인 이슈투데이의 창립 멤버이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언론사 창설과 같은 시도를 하게 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 IMF 사태를 겪으며 파산한 대기업들이 많았죠. 그래서 2000년대 초반에 창업이 많았습니다. 자연스럽게 코스닥 붐, 벤처 붐이 일었었죠. 학내 창업도 바야흐로 무척 장려되었습니다.
그 시기에 학생들과 인터넷 회사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전국에 있는 교수들과 함께 양질의 칼럼을 모아보자는 아이디어가 있었죠. 전문가들의 글을 모아 좋은 지식 플랫폼을 만들고자 했어요. 그 결과 창립한 것이 이슈투데이입니다. 전문가들의 시각을 일반인들에게 전달하는 교육적 성격도 띠고 있었죠. 한 2-3년 적극적으로 하다가 다른 이들에게 경영권을 넘겨준 이후로는 더 이상 관여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혹시 아직도 운영 중인가요? (답변: 네, 매일 기사가 올라오고 있습니다) 아 아직 사이트가 있군요. 그런데 플랫폼의 성격이 완전히 바뀌었네요. 원래는 일반 기사가 아닌 칼럼만을 게재했어요.
평소 즐겨보는 언론사나, 매체 혹은 저널이 있으신가요? 이중 학부생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것이 있으신지요.
▶ 다양하게 봅니다. 때때로는 유튜브의 알고리즘 추천을 따르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SNL을 재미있게 보았네요.(웃음) 네이버에 뜨는 뉴스 기사들을 열독하고, 관심 있는 주제가 생길 때마다 검색해서 봅니다.
학부생들에게는 장하준 교수의 저서나 유시민 작가의 『부자의 경제학, 빈민의 경제학』을 읽어보기를 추천해요. 그 내용들에 대한 입장에 상관없이 비판적 사고를 키우는데 좋지요. 그리고 경제추격론에 관심이 있다면 내가 쓴 저서들을 참고하면 좋을 것 같네요. 특히 『기업 간 추격의 경제학』은 같이 수업을 듣거나 지도받은 학생들의 논문을 다듬어서 낸 책이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스티브 잡스를 다룬 영화 ‘잡스’도 추천합니다. 내가 항상 강조하는 ‘think differently’의 중요성이 잘 담겨있는 영화예요. 영화에서 잡스는 직원들에게 기존의 PC보다 더 좋은 PC를 만들라고 말하지 않아요. 다른 PC를 만들라고 말하죠. 타인과 다르게 생각하라는 것이죠. 학생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주는 영화라고 생각해요.
2017년부터 지금까지 매년 꾸준히 『한국경제 대전망』을 발행하셨습니다. 이 시리즈를 쓰게 된 계기가 있으신가요?
▶ 출판사 북이십일의 김영곤 대표가 학부생 시절 운동권에서 함께 활동했던 선배예요. 한국 경제와 관련된 콘셉트의 책을 써보자는 선배의 제안을 받았어요. 교수와 전문가의 집필을 통해 차별성 있는 도서를 만들어보자는 목표를 가지고 『한국경제 대전망』을 집필하기 시작했죠. 지금은 경제추격연구소에서 『한국경제 대전망』을 매년 발행하고 있어요. 경제추격연구소는 내 제자들이 만든 연구소입니다. 제가 그동안 서울대에서 배출한 박사가 47여명, 석사가 70여명입니다. 꽤 많죠?(웃음)
비록 김난도 교수의 『트렌드 코리아』만큼 많이 판매되지는 않지만, 『한국경제 대전망』이 경제 분야에 있어서는 영향력이 있는 책으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현재는 경제 분야로 입시를 준비하거나 취업을 준비하는 사람도 관심있게 보는 시리즈가 되었죠. 사회에 좋은 공헌을 한 것 같아 뿌듯한 마음입니다.
저서 『경제추격에 대한 슘페터학파적 분석』으로 비서구권 학자 중 최초로 슘페터상을 수상하셨습니다. 앞으로 경제학자로서 가지신 목표는 무엇인가요?
▶ 더 열심히 연구해야죠.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하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과 다른 것, 차별적인 것을 해야 합니다. 노벨위원회에서도 남들과 차별되는 업적을 높게 평가한다고 명시하고 있고요. 나는 경제추격론을 연구하며 추격사이클 이론을 제시했고, 후발국의 경제 추격 과정을 기업, 산업, 국가 차원 분석에서 일관되게 수행했어요. 최소한 후발국의 경제성장을 다루는 부분에 있어서는 선도자에 속한다고 생각해요. 언젠가는 노벨상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웃음) 물론 노벨경제학상 수상에는 운도 많이 따릅니다. 노벨상을 받지 못하더라도 ‘노벨상을 받을 만한 학자’였다는 평가를 받고 싶어요.
더불어 올해 캠브리지 출판사에서 세 번째 저서를 출판할 예정입니다.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약 2천만을 내서 오픈 액세스로 출판하려 합니다. 그 저서가 어떤 임팩트를 가져올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경제추격론에 관심을 가진 경제학부생들에게 추천해주실 만한 저서나 논문이 있을까요? 학자의 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조언 부탁드립니다.
▶ 경제추격론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선 내 저서 『 기업 간 추격의 경제학』, 『 국가의 추격, 추월, 추락』을 읽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경제추격론의 재창조』도 추천하지만, 이 책은 학부 고학년 이상에게 적당합니다. 영어에 어려움이 없는 학생이라면 2019년에 출판한 『 The Art of Economic Catch-Up』 도 추천합니다 (내게 연락하면 파일을 보내주겠습니다).
학부생 때는 비판적 토론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자는 남들과는 다른 생각을 해야 합니다. 기존의 이론과 맞지 않는 부분을 찾아내고, 새로운 이론을 수립해야 해요. 학문이라는 것은 현상과 이론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고도 볼 수 있죠. 좋은 학자가 되기 위해서는 항상 의문을 가지고 탐구해야 하기에 독서 및 토론 활동을 통해 비판적, 창의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을 갖추면 좋겠어요.
마지막으로, 경제학부 학부생들에게 인생 선배로서 한 마디 말씀 부탁드립니다.
▶ 서울대생으로서 frontier에 도전하고 남들과 다른 것을 추구하라는 말을 하고 싶어요.
그렇다면 무엇을 어떻게 추구하면서 동시에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좌측과 같은 2x2 행렬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당연히 최고의 삶은 자기가 잘하면서도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이고, 최악은 못하면서 하기도 싫은 일을 하는 것이겠죠. 그리고 현실주의자는 하기 싫지만 잘할 수 있는 일을 하는 삶을, 이상주의자는 하고 싶지만 잘하지는 못 하는 일을 하는 삶을 살 것입니다. 우리 각자의 삶은 이 넷 중의 하나일 것이예요. 현재 자신이 어디에 위치하는지를 파악하고 앞으로라도 그중 가장 best combination을 찾아 도전할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
기획/편집: 이윤경, 이진현, 주민정
진행: 김명진, 오한결, 이윤경, 이진현, 주민정
제작: People of Economics